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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도시 지리] 서울 법정동명 유래

김 홍시 2025. 3. 30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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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군구명 법정동명 이름 유래 설명

종로구 수송동 옛 지명 수동(壽洞)과 송현(松峴)에서 한 글자씩 따와 붙여진 이름입니다 (종로구(鍾路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청풍계(淸風溪)와 백악산 백운동(白雲洞)의 머리글자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(종로구(鍾路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종로구 신교동 19세기 중엽 선희궁 동쪽에 새로 놓인 다리(新橋)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(종로구(鍾路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종로구 궁정동 조선시대 육상궁과 온정동의 이름을 합성해 만들어진 동명입니다 (종로구(鍾路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종로구 세종로 조선 시대 이곳이 정치·행정 중심지였기에 세종대왕의 묘호를 따서 세종로라 이름지었습니다 (종로구(鍾路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종로구 인사동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관인방(寬仁坊)과 대사동(大寺洞)에서 각각 ‘인(仁)’과 ‘사(寺)’를 따와 인사동이란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(인사동(仁寺洞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구 소공동 조선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의 궁이 있어 “작은공주골”로 불리던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습니다 (중구(서울특별시)(中區(서울特別市)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구 북창동 조선시대 선혜청(宣惠廳)의 북쪽 창고가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(중구(서울특별시)(中區(서울特別市)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구 남창동 조선 선조 때 설치된 선혜청의 창고 남쪽에 있던 마을이라 하여 유래된 이름입니다 (중구(서울특별시)(中區(서울特別市)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구 명동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례방(明禮坊)에서 이름을 따와 부르던 “명례방골”을 줄인 데서 명동이 유래했습니다 (중구(서울특별시)(中區(서울特別市)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구 다동 조선시대 궁중 음식을 맡은 사옹원의 다방골(茶房골)이라 불리던 곳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(중구(서울특별시)(中區(서울特別市)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구 장교동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 “장교(長橋)”의 이름을 딴 것이 장교동 지명의 유래입니다 (중구(서울특별시)(中區(서울特別市)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구 입정동 예전에 갓을 만드는 집에 우물이 있어 “갓방우물골”이라 부른 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(중구(서울특별시)(中區(서울特別市)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구 을지로동 고구려 을지문덕(乙支文德)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 동명의 유래입니다 (중구(서울특별시)(中區(서울特別市)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용산구 원효로동 광복 직후 일제식 지명을 버리고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(元曉大師)의 법호를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(용산구(龍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용산구 후암동 남산에 있던 둥글고 두터운 바위 “두텁바위”에서 유래한 이름으로, 한자로 厚岩(두터울 후, 바위 암)이라 표기했습니다 (용산구(龍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용산구 신창동 조선시대 호조의 신창(新倉)이라는 창고가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(용산구(龍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용산구 용산동 한강 서쪽 이 동네의 산줄기가 용의 모습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입니다 (용산구(龍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용산구 남영동 서울 남쪽에 군영(軍營)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남영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(용산구(龍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 (용산구(龍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동구 마장동 조선 초기부터 말을 기르던 마장(馬場)이 있던 곳이어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(성동구(城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동구 사근동 이 마을에 사근절(沙斤寺)이라는 절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(성동구(城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동구 성수동 임금의 군사 훈련장 성덕정(聖德亭)의 ‘성’자와 뚝섬 수원지의 ‘수’자를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(성동구(城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동구 옥수동 예로부터 ‘옥정수’(玉井水)라는 유명한 우물이 있어 “옥정숫골”로 불리던 것을 한자로 옮긴 이름입니다 (성동구(城東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광진구 광장동 자연마을 광진리(廣津里)의 ‘광’자와 장의동(壯義洞)의 ‘장’자를 따서 만든 지명입니다 (광진구(廣津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광진구 군자동 옛날 임금 일행이 머무르던 밤에 왕비가 아들을 낳은 일화에서 유래하여 “임금의 아들을 낳은 곳”이라는 뜻으로 군자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(광진구(廣津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광진구 화양동 조선 세조 때 한명회가 왕위를 빼앗긴 단종을 위해 이곳 화양정(華陽亭)에서 회행(回行)을 기원했던 것에 연유한 이름입니다 (광진구(廣津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광진구 중곡동 능동과 면목동의 중간에 있어 “가운데말(간뎃말)”이라 불리던 것을 한자로 옮긴 중곡동에서 유래되었습니다 (광진구(廣津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신설동 새로 마을을 만든 데서 붙은 이름으로, ‘새말’이라 불리던 것을 한자로 신설동이라 했습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제기동 조선시대 선농단(친경대)에서 풍년을 기원하던 ‘제터’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전농동 조선시대 국왕이 친히 밭갈이를 하던 적전(籍田)이 있던 곳이라 전농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장안동 조선시대 이 일대 들판을 ‘장안벌’ 또는 장안평(長安坪)이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청량리동 고려시대 창건된 사찰 청량사(淸凉寺)가 있어 청량리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회기동 연산군 생모 윤씨의 묘소인 회묘(懷墓)가 있어 붙은 이름으로, 훗날 회기동이 되었습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휘경동 조선 순조 생모 수빈 박씨의 묘인 휘경원(徽慶園)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용두동 마을을 감싼 산세가 용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대문구 이문동 마을 어귀에 도둑을 막는 속칭 ‘이문(裡門)’이 있어 불리던 ‘이문안’이 한자로 표기되어 이문동이 되었습니다 (동대문구(東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랑구 면목동 조선시대 국립 목마장(牧馬場)이 앞에 있던 곳이라 “말목장 앞”의 뜻으로 면목동이 유래되었습니다 (중랑구(中浪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랑구 상봉동 자연마을 상리(上里)와 봉황리(鳳凰里)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입니다 (중랑구(中浪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랑구 묵동 이 고장 특산물이었던 묵(메주)을 만들어 팔던 마을이라 “먹골”이라 불리던 데서 묵동이 유래되었습니다 (중랑구(中浪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랑구 망우동 서울-구리 경계의 망우고개(忘憂峴)에서 이름을 딴 “근심을 잊는 고개”라는 뜻의 지명이 망우리였고, 이것이 망우동으로 이어졌습니다 (중랑구(中浪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중랑구 신내동 새고개마을 ‘신현(新峴)’과 안마을 ‘내곡(內谷)’에서 한 글자씩 따서 조합한 이름입니다 (중랑구(中浪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길음동 골짜기가 길게 이어진 마을이라는 뜻의 기리울골·기레미골을 한자로 옮긴 것이 길음동의 유래입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의 옛 이름 ‘되너미고개’를 한자로 옮긴 돈암현(敦岩峴)에서 비롯된 지명입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동선동 1949년 동소문동과 삼선동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동소문동 조선시대 서울 4소문 중 하나인 동소문(東小門)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동명입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보문동 이 지역에 있는 사찰 보문사(普門寺)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삼선동 혜화문 밖 평평한 들판을 삼선평(三仙坪)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상월곡동 반달 모양 산 기슭의 마을을 ‘웃다리골’(上月谷里)이라 한 데서 상월곡동이 유래되었습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정릉동 조선 태조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(貞陵)이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성북구 종암동 고려대 뒤편에 북모양 큰 바위(鍾岩)가 있다 하여 종암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(성북구(城北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노원구 공릉동 서쪽 마을 공덕리(孔德里)와 동쪽의 능골(태릉, 康陵所在地)의 앞 글자를 따 ‘공’+'릉'으로 만든 이름입니다 (<마을해설사와 함께 걷는 우리 마을 이야기(1)> 공릉동엔 공릉(孔陵)이 ...).
은평구 불광동 예로부터 이곳에 있던 사찰 불광사(佛光寺)에서 이름을 따온 동명입니다 (은평구(恩平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서대문구 신촌동 조선시대 ‘새터말’이라 부르던 마을을 한자로 옮겨 신촌(新村)이라 한 데서 유래합니다 (서대문구(西大門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강서구 염창동 조선 말 서해 염전에서 운반한 소금을 보관하던 소금 창고(鹽倉)가 있어 붙여진 지명입니다 (염창동은 조선시대말 서해안의 염전으로부터 채취해온 소금을 서울로 ...).
금천구 가산동 가리봉동(加里峰洞)의 ‘가’와 독산동(禿山洞)의 ‘산’을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(금천구(衿川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금천구 독산동 마을 뒷산에 나무가 없어 민둥한 산이라 ‘독’산(禿山)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습니다 (금천구(衿川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금천구 시흥동 1795년 금천현을 시흥현(始興縣)으로 개칭한 것에서 비롯된 지명입니다 (금천구(衿川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영등포구 당산동 마을 언덕에 있던 부군당(府君堂)에서 유래한 이름으로, “당산(堂山)”이라 불렀던 데서 온 동명입니다 (영등포구(永登浦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영등포구 여의동 홍수 때도 물에 잠기지 않던 이 섬을 두고 주민들이 “너의 섬”이라 한 것을 이두 표기하여 여의도(汝矣島)라 부른 데서 동명이 유래했습니다 (영등포구(永登浦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영등포구 문래동 일제강점기 방직공장이 들어서자 일본인들이 “사옥정”이라 부르던 것을 방적기계 물레와 목화 전래의 뜻을 따 “문래(紋來)”라 이름지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(영등포구(永登浦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영등포구 도림동 마을 뒷산이 성처럼 둘러싸여 “되미리”라 부르던 것이 한자식으로 바뀌어 도림(道林)이 된 데서 온 이름입니다 (영등포구(永登浦區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.
동작구 노량진동 조선시대 이곳 한강 나루에 해오라기(鷺)가 많아 붙은 이름으로, 한자로 노량진(鷺梁津)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동명입니다 (수모 혼례 - KRpia 검색결과).
강남구 압구정동 조선 세조 때 권신 한명회가 이곳에 세운 정자 “압구정(狎鷗亭)”의 이름에서 따온 지명입니다 (압구정동 - 디지털강남문화대전).
송파구 잠실동 조선시대 왕실의 누에치기 시험장인 잠실(蠶室)이 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(염창역·청량리역…이름 유래 아시나요? - 경향신문)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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